도쿄도청 전망대

여행의 단상 2008.08.17 19:29
서울시청도 가본적 없고 천안 시청 옥상에도 올라가본적 없는 내가
다른 나라의 시청에 가봤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하긴 하다.
신주쿠에서 근무하던 시절 도쿄도청 전망대에 가보라고 하길래 어슬렁거리고 갔는데
관광일본의 기본 자세를 보는 기분이랄까..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청인 곳인데 관공서의 한층을 전망대로 할애하고 있고
관광 안내 센터도 있다.
전망대는 전용 엘레베이터가 있고 형식적인 가방 검사를 하긴 했는데 친절했다.
간사이 지방 여행을 할때 간 전망대는 전부 유료였는데
이곳은 무료이며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므로 야경을 보기에도 좋다.
이러니 관광객들에게 도쿄도청 전망대는 꽤나 매력적인 곳이다.

신주쿠 고층빌딩군에는 독특한 외양을 자랑하는 고층 건물들이 있는데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넓은 편이다.
우리나라처럼 빽빽하게 지어 옆건물 안이 훤히 보이고 그늘지는 그런 건물거리가 아니다.
그러니 전망도 좋은 편.
그 해 도쿄는 정말 지진이 자주 일어났는데 30층이 넘는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것은
지진에 강한 설계구조라는 것을 자부하는 듯 보인다.

도쿄도청은 신주쿠 고층빌딩군에 있는데 정말 크다.
아래 사진같은 건물이 양옆으로 서있는데 저걸 바로 밑에서 카메라로 잡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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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청 마당.
40층이 넘는 곳에서 보니 사람이 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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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T 도코모 빌딩 건물도 보인다.
신주쿠의 랜드마크라는데 요요기쪽에 있다고 들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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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안쪽은 기념품가게와 카페가 있다.
기념품 종류가 많고 규모가 꽤 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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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이 조형물이 전부 도쿄도청 건물이라는 건데...
40층이 넘는 건물이 본관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것 같은데 꽤 딸린 건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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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알고 있는 것들 - 게이샤, 마이코

여행의 단상 2008.08.02 01:14
2004년 10월 교토 기요미즈데라.

이 화려한 복장의 여인들을 보면서 게이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게이샤는 외국인이 일본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으니.
저 무지막지한 높이를 자랑하는 신은 경사가 꽤 있는 이곳까지 어떻게 걸어왔나 신기할 정도.
화려한 기모노와 머리장식, 특이한 모양의 양산은 그야말로 일본 인형스러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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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보니 관광지 근처에는 저런 복장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고.
일반인이 진짜 게이샤를 보기는 힘들다고 한다.
혹시나하고 밤에 기온근처를 서성이다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이들에게는 전담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몇몇 외국인들이 여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좋다고 허락하였다.
이참에 나도 끼어서 몇장 촬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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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오비를 보니 이들은 마이코 분장을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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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기생이 예인으로 취급되기보다는 창녀로 취급될때가 많은데
게이샤도 그렇게 잘못 알려진 이미지가 많다.
게이샤 역시 엄격한 수련을 거친 예인들이다.
마이코 시절에는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로 치장하지만 게이샤가 되면 오히려 복장이 수수해진다.
내가 찾아본 자료에는 검은색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의 사진이 있었는데
일반 기모노 복장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이 화려한 복장의 마이코가 게이샤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지만
실제 유곽의 여인들인 오이란이나 타이유의 화려한 모습이 게이샤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
오이란이나 타이유는 오비의 매듭을 앞으로 묶고 마이코나 게이샤는 뒤로 묶으니
외관상으로 차이를 식별할 수 있다.

일본여행을 가기 몇년전 교토와 게이샤에 관한 기사가 실린 책자를 읽은 적이 있는데도
나는 이들을 보자 게이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들이 마이코복장의 관광객이란 것을 인지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잘못된 선입견이란 참 무서운 거다.

공항에는 여유있게 도착하자.

여행의 단상 2008.07.30 12:20

자기 돈 내고 가는 해외여행을 마음내키는 대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외여행이란 일생 몇번 없는 이벤트인 것이다.
그런만큼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관광 시간을 갖는 것이고
의도치않게 다른 일에 시간이 걸릴때는 좀 안달이 난다.

2004년 가을 간사이 여행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보통 출발 30분 전부터 탑승수속을 하고 정시가 되면 이륙을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정시가 되어도 비행기가 꼼짝을 안한다.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손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그때문인지 수화물 싣는 것이 지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급할때일수록 일이 꼬일때가 많으니 누군가 늦나보지 했다.
여기까진 오케이.

20분쯤 기다리자 3명이 탔고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었다.
10대인지 20대 초반인지 모를 남자애와 그 부모로 보였는데
3명의 손에는 면세점 쇼핑백이 서너개씩 들려있었다.
순간 면세점 쇼핑하느라 늦은거야? 라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

물론 비행기가 연착될 수도 있고 기상환경이 좋지 않아 비행 못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20분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약속 시간에 20분 늦으면 미안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단 3명의 사람이 수백명이 타는 비행기의 출발을 지연시킨것이 아닌가 말이다.
남의 시간도 소중한 것이다.
늦었기에 숨이 차게 달려온 얼굴도 아닌 그 사람들을 보니 살짝 화가 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사실 손에 손에 가득 들고 있는 쇼핑백때문에 늦은건가 하여 더 눈살이 찌푸려진 것이다.

면세품은 미리 주문해두고 공항에서 찾을 수도 있는 거니까
여기서 쇼핑하느라 늦은 건 아닐 수도 있다.
인천공항에 늦게 도착해 수속이 늦었거나
도착할때까지 비행기 안뜨고 기다려준다는 도심공항터미널에서 탔을 가능성도 있다.
해외여행시는 수속시간을 고려하여 3시간 전에 오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좀 더 여유있게 출발했더라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정시에 비행기가 출발하지 못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하며 나 역시도 여전히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한다.



짤방은 기내식.
인천-오사카는 비행시간이 2시간 좀 안되는 거리지만 기내식은 꼬박꼬박 나온다.
시간 많다하여 아무생각없이 공항에서 밥사먹고 타면 나처럼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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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 관련 유의점

생활 2008.07.29 00:49
휴가 시즌을 맞이하여 환전 관련 이야기 정리차 포스팅.

1.
대부분 여행이나 출장이 당장 내일로 잡히는 경우는 없으니
출국날 수선떨지 말고 미리 환전해두는 것이 좋다.
김포공항은 취항 노선이 별로 없어 수속에 시간이 많이 안걸리지만
인천 공항은 출국 수속시 2시간씩 줄을 서기도 하는데 휴가철은 특히 더하다.
안그래도 출국날은 셔틀버스에 노트북을 놓고 내린다거나
여권을 두고 오는 등의 실수를 저질러 마음도 급하고 시간없는 사람들이 많다.

2.
넉넉히 환전하는게 좋다.
그냥 카드 쓰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는 카드가 안되는 식당이 많다.
또한 비자, 마스터 카드결제의 경우 1.1~1.2%의 수수료를 별도로 내야한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을 경우나 비행기 시간에 늦을 것을 대비하여
호텔이나 공항까지의 택시비 정도는 있어야 한다.
일본은 택시비가 기본 600엔 정도이며 공항과 도심 사이는 만엔이상 나오기도 한다.
일정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넉넉히 환전해 가야한다.
돈 떨어졌다고 새로 출장오는 사람에게 환전해오라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3.
몇백달러 환전하면 100달러짜리를 주로 주고 10달러는 10장 정도 주는데
10달러 짜리를 많이 달라고 하는 것이 사용할때 좋다.
100달러 짜리를 내면 난색을 표하는 곳도 있었다.

4.
팁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팁은 보통 현금으로 주니 1달러 정도의 화폐를 많이 챙겨두는 것이 편하다.
아침에 호텔을 나설때 침대위에 1~2달러 정도 팁으로 놓고 가야하고
동남아는 길거리에 1달러짜리 간식이나 관광품이 많다.
작은 가게의 공연등을 보면 노골적으로 팁을 요구하기도 한다.
동남아는 자국 화폐도 있지만 관광지에서 달러를 많이 사용하고
한국 관광객이 많다보니 천원짜리를 받기도 한다.
(내가 일본을 편하게 여기는 이유중 하나가 팁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5.
외화를 원화로 환전할 경우 지폐만 환전하고 동전은 별 수 없이 기념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많다.
동전이 환전 안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엔화 동전은 원화로 환전해준다.
50%밖에 안쳐주니 안하는 것뿐.
1000원 정도의 가치를 갖는 1달러는 그정도로 환전되지만
비슷하게 1000원의 가치를 가짐에도 100엔은 동전이란 이유로 500원 정도밖에 안된다.
그러니 동전은 해외에서 다 쓰고 오는게 더 가치가 있다.
역으로 엔화를 동전으로 달라하면 더 싸게 환전할 수 있다.
무겁게 동전 들고 다니기가 귀찮아서 나는 하지 않지만.
이건 3년전 외환은행에서 알게 된 사실이므로 지금과는 다를 수 있다.
엔화 이외에도 적용되는지는 안물어봐서 모른다.

시간에 따른 삶의 궤적

여행의 단상 2008.07.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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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0일 꽃지 해수욕장에서.

번호판에 남은 라이트 형제의 업적

여행의 단상 2008.07.27 22:31
2003년 1월의 노스캐롤라이나 출장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랠리더햄에 내려 짐을 챙기는데 워크스테이션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게 없다면 우리가 미국에 머물 이유가 없다.
출장지로 보내달라하고 목적지인 Cary로 출발했다.

우리가 출장간 곳은 회사 건물 하나만 덜렁 있는 외지였고
그들의 러시아워는 서울의 혼잡에 비교하면 매우매우 귀여운 수준인 시골이었다.
숙소는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근처 마트를 찾아 음식을 샀으나 우린 요리 불가능.
일주일 버틴뒤 결국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라 퀸타 인으로 옮겼다.

낮에는 햇빛이 따뜻하지만 밤에는 추운 날씨였다.
한국보다는 춥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단히 건조해서 난 그 기후가 매우 힘들었고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더니 결국 돌아오기 전날은 감기에 걸려 누워버렸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스캐롤라이나에 대한 추억은 그다지 아름다울게 없다.

그런 내게 노스캐롤라이나에 대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라이트 형제다.
사실 나는 라이트 형제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비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나
이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짧은 출퇴근 시간동안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구경에만 매진하던 나는
자동차의 하얀색 번호판에 하늘색으로 무언가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그것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모든 차의 번호판에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동행에게 저게 무어냐 물었으나 역시 몰라서 동승한 미국인 FA에게 물으니
"Wright Brothers?"라고 한다.
아하. 저건 글라이더 그림이구나.
라이트 형제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비행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초등학생때 읽던 위인전에는 라이트 형제의 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꿈많은 어린이들에게는 목표가 되는 사람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형제들은 오하이오주 출신이지만 라이트형제 국립기념관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그들의 첫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난 곳에 기념관을 지었고
자동차 번호판에 문구와 그림을 넣어 그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들이 라이트 형제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외국인인 나도 알 것 같다.

일요일 하루는 우리에게 휴일로 주어졌다.
무엇을 할까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FA가 라이트 형제가 비행한 곳에 가보라한다.
벽의 지도에서 해변을 가리키며 여기서 다섯 시간 거리라고.
너무 멀다고 하자 워싱턴 DC를 추천한다.
역시 다섯시간...
중국인들이 대륙기질이 있어 스케일이 크다더니
미국인들의 거리감각도 그에 못지 않구나.
다섯시간이면 어디서든 땅끝에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나라 출신인 나는
하루뿐인 휴일을 10시간이나 길바닥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다니다 길을 잘못들어 고속도로에서 밤까지 휴일을 보내니 후회가 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가 자랑해마지않는 그 라이트 형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에 가볼걸 하고 말이다.

불상에 두른 천의 의미는 대체 뭘까

여행의 단상 2008.07.27 00:54
일본의 사찰이나 오래된 동네에 가면 불상등에 붉은 천을 둘러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나라역 근처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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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교토의 산쥬산겐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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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에서는 붉은 의상의 불상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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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흰색 천으로 두른 곳도 하나 발견했는데 교토 료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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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러, 냅킨, 앞치마라고 농담했지만 그 위치에 둘러진 천의 의미를 모르겠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검색엔진에서 찾아봐도 답이 없다.

붉은 색은 워낙 상징적인 색이고 어딜가도 이런식인지라 나중에는 일본의 불상은 다 그런가했다.
우리네 불상과는 다른 모습에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그냥 넘어가게 되고
첫 여행의 예민한 감각을 자꾸 잃게 되는 것 같다.

욘사마를 좋아하던 소녀같은 일본인 아주머니

여행의 단상 2008.07.2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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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의 어느 일요일 아사쿠사에 갔다.
기념품 거리에 한류가 인기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있어 웃어버렸다.
맨 위는 배용준씨다.

배용준씨를 처음 TV에서 본 것은 김지호씨와 함께 출연했던 사랑의 인사라는 드라마였다.
얼굴 밝히는 나는 배용준씨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클라스메이트였던 남자애에게 이야기를 했다가 기생오라비 취향이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배용준씨는 많은 인기를 얻은 스타가 되었고 일본에선 한류의 주역이 되었다.
그 미소가 돈주고 연습해서 만들어진 가식적인 거라는둥 험담이 있지만
계속 웃으면 사람 마음도 그에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배용준씨의 미소를 좋아하고
열성팬은 아니지만 내겐 계속 호감이 가는 배우로 남아 있다.


며칠뒤 도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이제 익숙해진 출입국 카드를 휘리릭 써버리고 쉬고 있는데
옆의 아주머니 두분이 출입국 카드를 놓고 한동안 씨름중이셨다.
아버지 환갑때문에 귀국이 허락되었고 마침 친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오지랖 넓은 나는 도움을 주겠노랍시고 끼어들었고
영어, 일어, 바디랭귀지가 혼합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찌어찌 출입국 카드를 쓴뒤 아주머니께서 다스 초콜렛을 권하셨고 예의상 한개 집어 먹었다.
동행이 있으신 분이라 그정도에서 대화가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 말을 거셨다.
일어로 대화할 줄 알고 난 더이상 말붙일 엄두를 못냈었는데 영어를 곧잘 하셨다.
이 일본인 아주머니께서는 한국에 가는 것이 처음이라며 배용준씨 팬이라고.
일본의 중년 여인들이 배용준씨에게 열광한다고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라 많이 놀랐다.

사실 좋아하는 배우때문에 외국까지 갈 할머니는 우리나라에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아들뻘인 배우때문이라면 주책맞다는 소리도 들을 것이다.
사는 집이니 그런 짓도 하지라며 시기어린 소리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에 돈을 쏟아붓고 팬질에 익숙한 사람이 많지 않은가.
나이는 걸림돌이 못된다.
좋아하는 배우때문에 첫 한국여행을 하게 되어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처음 본 나에게 수줍어하면서 조용히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시는 그 아주머니가 난 너무 좋아졌다.

후유소나를 몇번이고 봤으며 배용준씨가 너무 좋다고 하신다.
자신에게 그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말씀하셨다.
친구와 자신은 춘천에도 갈 예정이라고.
가방에서 꺼내 보여준 손거울 안쪽에는 미소짓는 배용준씨 사진이 있었다.
6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첫사랑에 설레는 소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 나는 겨울연가를 다 챙겨보지 않았지만 맞장구를 치기위해 최지우씨와 박용하씨 이름도 들먹거렸고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너무 좋아하신다.
도쿄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도착후 2박 3일동안 잠실 롯데 호텔에 머물거라는 두 분과 헤어졌다.

짧은 귀국 일정을 마치고 다시 출국하면서 도쿄에 도착하니 공항에 사람이 많다.
그날 욘사마가 도쿄에 오는 날이었다.
혹시 그 아주머니도 나오셨을까..
그 아주머니들이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갖고 돌아오셨기를
계속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시며 사시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