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여행

여행의 단상 2014.10.06 22:25
아침 일찍 출발했어도 도착하니 10시가 다되었고 비까지 왔다.

군산역에도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저녁때 가보니 불도 꺼져있었다.

소파가 있기에 기차 기다리는 동안 피곤한 몸을 쉬기에는 좋지만.



 


군산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데 버스로 30분쯤 걸렸다.
여러 관광코스가 있지만 난 많이 안걸을거니까 가장 짧은 구불길 탐방 코스로 갔는데 다 돌아보진 못했다.
근대역사박물관이 관광의 시작이라길래 여기서 내려서 박물관 통합권을 구매한뒤 표를 다 쓰기 위해 4군데를 둘러봤다.
타시민은 3천원인데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뭐 여기 온 기념으로.
일제 수탈의 역사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군산을 찾는 여행객들 대부분이 들릴터인 이성당.
나도 단팥빵 하나 먹겠다고 여기까지 왔다...
박물관쪽에서 두 블럭쯤 걸었는데 별로 멀지 않다.
아침으로 크리스피 크림에서 에스프레소 케익을 사서 편의점 커피랑 먹었는데
가방에 가루가 잔뜩 떨어져서 기차에서 먹기에는 좋지 않았다.
너무 배가 고픈고로 11시도 안되서 도착.
마침 11시가 앙금빵이 나오는 시간이었다.
긴 줄도 줄이지만 트레이째 사가는 사람들의 패기에 질렸다.
최소 구매가 5개인 사람들 틈에서 쌈빡하게 2개를 사고 과빵갤에서 본 모찌모찌 크림치즈를 구매한뒤
다들 맛있다고 하는 밀크쉐이크를 샀다.




앙금빵이라고 하는 단팥빵은 크기가 꽤 큰 편이었고 1300원으로 기억된다.
금방 구워져서 폭신해보였는데 빵이 매우 얇았고 팥이 많았는데
거피가 안되서 껍질이 섞여있지만 부드러워서 거슬리진 않았다.
배가 고프니 다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패했다.
맛집이 전부 맛집인 것도 아니고 사람의 취향이란 제각각이라지만 이건 아니었다.
너무 달아...
모찌모찌 크림치즈는 그냥 크림치즈맛.
밀크쉐이크가 제일 괜찮았는데 끝맛에 산뜻함이 남는게 독특했다.
단팥빵과 크림치즈빵은 반씩만 먹고 가방에 넣은채 하루종일 방치.
달고 느글거려서 점심을 거를까 하다가 2시 넘어서 복지리를 먹으며 속을 달랬다.
돌아다니다 오후에 다시 와서 선물용으로 야채빵과 생크림 단팥빵을 샀는데 이것도 대실패.
야채빵은 양배추가 많이 들긴 했어도 먹다 보니 느끼했고
생크림 단팥빵은 생크림도 달아서 이중고...
뭔가 납짝한 찹쌀떡같은 것을 하나 샀는데 이것도 안에 들은 팥이 엄청 달았다.
요즘 사람들이 달게 먹는다고는 하지만 당도도 적당해야지 원...
이성당 빵은 달다는 기억만 남았다.
다시 군산에 가게 되어도 이 빵들은 리스트에서 삭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워낙 유명한 곳이라 들러봤다.
일제 강점기 일본 지주의 집이라지만 이젠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이 묘하다.


 

 

용두산 공원에서 바라본 부산

여행의 단상 2011.09.15 02:36


지난달 중순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은 두번 정도 가봤지만 여유롭게 다녀보진 못했고 마지막으로 다녀온지도 벌써 십년이다.

평지가 적고 산이 많으며 해안가를 따라 발달한지라
집이 산기슭까지 차곡차곡 지어져 있다는 것이 부산에 대한 첫인상.
기무라 타쿠야가 출연한 히어로 영화에서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달동네같은 느낌이 꽤나 이국적이었다.

산토리니처럼 색깔을 통일하면 좋을텐데 왜 안그러냐고 친구는 투덜거렸지만
자연스럽게 한채 한채 지어나간 느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이 모여들어 사는 곳 같다.
여긴 지중해가 아니라서 햇빛이 하얀벽과 푸른 지붕에 쏟아지는 듯한 그런 느낌도 없을 것 같고
일단 부산은 대도시라 집도 많은데 그래서야 이웃집 구별 하기가 어려울 듯.


자갈치 시장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비싸다는 말도 같이 딸려온다.
산지에 가서 회를 먹으면 쌀것 같지만 활어라 더 비싸다는 뭐 그런것도 있을테고
유명세에 따른 바가지도 있을거고.
갈매기가 나는 듯한 건물은 멋지지만 안에 들어가면 일반 수산 시장이다.
친구는 자갈치 시장에 대한 기대가 꽤 컷던지라 싫다는 나를 끌고 기어이 갔는데
매우 실망하면서 나왔다.
감상이 어때? 하고 물으니 시큰둥한 얼굴로 구려...라고 대답해서 너무 웃겼다.
수산 시장이라는 곳은 원래 다 비슷한거 아님?
깨끗하고 분위기 있는 곳 좋아하는 아가씨에겐 좀 버거운 장소긴 하다.

노점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해물을 팔고 있었는데
천안에서는 구하기 힘든 고래 고기나 상어 고기도 팔고 있었다.
고래 고기는 동생이 가져와서 한번 먹어봤는데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맛을 지닌 부위가 있어 식구들은 다들 좋아했었다.
며칠 지난 고기니만큼 난 그 특유의 암모니야 향이 약간 거슬렸는데 상어 고기는 더 하다는 말을 들었다.
경험치 증진을 위해 맛을 보고는 싶었지만 쬐끔만 팔것 같지는 않고
친구가 저걸 같이 먹을 일은 절대 없을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섬진강

여행의 단상 2008.11.13 08:05




관광 특구인 구례는 공장이 없다고 한다.
깨끗한 섬진강이 보이는 식당에서 참게 매운탕을 먹었다.
매운탕이라하면 지나치게 맵고 조미료 탓인지 뒷맛이 텁텁한 경우가 많은데 이집은 맵지도 않으면서 개운한 국물이 좋다.
아마 섬진강에서 잡힌 민물 새우로 국물을 낸 탓일게다.
참게는 작아 살이 별로 없지만 알이 꽉 찬 것이 맛이 일품이다.
반찬도 간이 세지 않고 슴슴하니 좋았다.
전라도가 음식맛이 좋다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전라도에 오니 감나무가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이마트에서 대봉 하나에 4천원씩 판다던데 여기서 사오지 않은게 아쉽다.
다래는 덩굴에서 나는 것이려니 했는데 나무에 달리는 것임을 알고 놀라면서 나도 별 수 없는 도시 사람인가 보다.

철이른 지리산 단풍

여행의 단상 2008.11.13 07:51




10월 26일의 지리산 피악골.
시간이 없어 삼홍까지 가지 못했기에 단풍 구경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주일 후에 갔더라면 정말 아름다웠을텐데.

화엄사 화엄제

여행의 단상 2008.11.13 07:46





10월 25일 화엄사.
불교음악이라해도 요즘은 신식 악기가 등장하는 모양이다.
마음의 안식을 찾는 이들은 추운 날씨따윈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일인당 핫윙 50개 혹은 100개

여행의 단상 2008.10.01 20:30

KFC에서 핫윙 1+1 행사하니까 생각나는 핫윙에 관한 추억.

출장갔을때는 늘 그렇듯이 열심히 일하고 저녁을 늦게 먹는데 어느날인가는 pub에 갔다.
대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날이 저문뒤의 미국은 웬지 무서워서 돌아다닐 엄두를 못내는 소심한 우리였다.
하물며 pub은 더더욱 무서운 곳이었는데 현지 회사 직원들이 같이 가자고 했기에 겨우 갈 수 있었다.

주인이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그냥 그렇게 장식만 해놓은 것인지 몰라도 운동경기 소품들로 장식된 pub이었다.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하고 있었고 조명은 약간 어두침침.
늘씬하고 이쁜 금발 웨이트리스 언니가 왔다갔다 하는 곳.
저녁식사겸 온 것이니 뭔가 먹어야겠는데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핫윙뿐이었다.
그것도 20개, 50개, 100개 단위로 판다...
같이 온 미국인들은 한사람당 50개씩 시켰다.
우와~하고 있는데 일행들이 세명분 합쳐서 50개 주문해버렸다..

아니 근데 사실..
일인당 50개라면 엄청난 숫자 같긴 해도..
핫윙은 한입거리잖아..
난 백숙이나 닭도리탕은 안좋아하지만 튀긴 닭은 매우 사랑해서 핫윙같은거 몇십개는 먹을 수 있다구...
그리고 같이 온 미국인들은 내 몸집의 두배니깐 50개 정도 먹어도 이상하지 않다구..
별로 놀랄 일 아니잖아...
근데 셋이 50개라니...

어떻게 사람이 50개씩 먹냐며 이런건 일인당 4개가 정량이라며 미국인들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남자 일행들 앞에서
난 차마 더 먹을 수가 없었다..
프라이드 통닭같은건 한사람이 반마리 혹은 한마리는 먹는 나라 사람들이면서 어째서 핫윙은 기준이 4개인건데!
그때의 나는 매우 소심한 "아가씨"였던지라 별 수 없이 손을 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50개 다먹은 사람들 앞에 쌓여있는 닭뼈의 산..
그런데 100개 먹은 사람도 있었다..
아니 이해해..이해할 수 있어...
핫윙같은거..한숟가락 정도의 살밖에 안나온다구...
근데 당신들 정말 빨리 먹는구나...

도쿄도청 전망대

여행의 단상 2008.08.17 19:29
서울시청도 가본적 없고 천안 시청 옥상에도 올라가본적 없는 내가
다른 나라의 시청에 가봤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하긴 하다.
신주쿠에서 근무하던 시절 도쿄도청 전망대에 가보라고 하길래 어슬렁거리고 갔는데
관광일본의 기본 자세를 보는 기분이랄까..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청인 곳인데 관공서의 한층을 전망대로 할애하고 있고
관광 안내 센터도 있다.
전망대는 전용 엘레베이터가 있고 형식적인 가방 검사를 하긴 했는데 친절했다.
간사이 지방 여행을 할때 간 전망대는 전부 유료였는데
이곳은 무료이며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므로 야경을 보기에도 좋다.
이러니 관광객들에게 도쿄도청 전망대는 꽤나 매력적인 곳이다.

신주쿠 고층빌딩군에는 독특한 외양을 자랑하는 고층 건물들이 있는데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넓은 편이다.
우리나라처럼 빽빽하게 지어 옆건물 안이 훤히 보이고 그늘지는 그런 건물거리가 아니다.
그러니 전망도 좋은 편.
그 해 도쿄는 정말 지진이 자주 일어났는데 30층이 넘는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것은
지진에 강한 설계구조라는 것을 자부하는 듯 보인다.

도쿄도청은 신주쿠 고층빌딩군에 있는데 정말 크다.
아래 사진같은 건물이 양옆으로 서있는데 저걸 바로 밑에서 카메라로 잡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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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청 마당.
40층이 넘는 곳에서 보니 사람이 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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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T 도코모 빌딩 건물도 보인다.
신주쿠의 랜드마크라는데 요요기쪽에 있다고 들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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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안쪽은 기념품가게와 카페가 있다.
기념품 종류가 많고 규모가 꽤 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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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이 조형물이 전부 도쿄도청 건물이라는 건데...
40층이 넘는 건물이 본관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것 같은데 꽤 딸린 건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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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알고 있는 것들 - 게이샤, 마이코

여행의 단상 2008.08.02 01:14
2004년 10월 교토 기요미즈데라.

이 화려한 복장의 여인들을 보면서 게이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게이샤는 외국인이 일본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으니.
저 무지막지한 높이를 자랑하는 신은 경사가 꽤 있는 이곳까지 어떻게 걸어왔나 신기할 정도.
화려한 기모노와 머리장식, 특이한 모양의 양산은 그야말로 일본 인형스러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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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보니 관광지 근처에는 저런 복장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고.
일반인이 진짜 게이샤를 보기는 힘들다고 한다.
혹시나하고 밤에 기온근처를 서성이다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이들에게는 전담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몇몇 외국인들이 여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좋다고 허락하였다.
이참에 나도 끼어서 몇장 촬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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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오비를 보니 이들은 마이코 분장을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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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기생이 예인으로 취급되기보다는 창녀로 취급될때가 많은데
게이샤도 그렇게 잘못 알려진 이미지가 많다.
게이샤 역시 엄격한 수련을 거친 예인들이다.
마이코 시절에는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로 치장하지만 게이샤가 되면 오히려 복장이 수수해진다.
내가 찾아본 자료에는 검은색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의 사진이 있었는데
일반 기모노 복장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이 화려한 복장의 마이코가 게이샤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지만
실제 유곽의 여인들인 오이란이나 타이유의 화려한 모습이 게이샤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
오이란이나 타이유는 오비의 매듭을 앞으로 묶고 마이코나 게이샤는 뒤로 묶으니
외관상으로 차이를 식별할 수 있다.

일본여행을 가기 몇년전 교토와 게이샤에 관한 기사가 실린 책자를 읽은 적이 있는데도
나는 이들을 보자 게이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들이 마이코복장의 관광객이란 것을 인지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잘못된 선입견이란 참 무서운 거다.

공항에는 여유있게 도착하자.

여행의 단상 2008.07.30 12:20

자기 돈 내고 가는 해외여행을 마음내키는 대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외여행이란 일생 몇번 없는 이벤트인 것이다.
그런만큼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관광 시간을 갖는 것이고
의도치않게 다른 일에 시간이 걸릴때는 좀 안달이 난다.

2004년 가을 간사이 여행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보통 출발 30분 전부터 탑승수속을 하고 정시가 되면 이륙을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정시가 되어도 비행기가 꼼짝을 안한다.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손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그때문인지 수화물 싣는 것이 지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급할때일수록 일이 꼬일때가 많으니 누군가 늦나보지 했다.
여기까진 오케이.

20분쯤 기다리자 3명이 탔고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었다.
10대인지 20대 초반인지 모를 남자애와 그 부모로 보였는데
3명의 손에는 면세점 쇼핑백이 서너개씩 들려있었다.
순간 면세점 쇼핑하느라 늦은거야? 라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

물론 비행기가 연착될 수도 있고 기상환경이 좋지 않아 비행 못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20분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약속 시간에 20분 늦으면 미안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단 3명의 사람이 수백명이 타는 비행기의 출발을 지연시킨것이 아닌가 말이다.
남의 시간도 소중한 것이다.
늦었기에 숨이 차게 달려온 얼굴도 아닌 그 사람들을 보니 살짝 화가 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사실 손에 손에 가득 들고 있는 쇼핑백때문에 늦은건가 하여 더 눈살이 찌푸려진 것이다.

면세품은 미리 주문해두고 공항에서 찾을 수도 있는 거니까
여기서 쇼핑하느라 늦은 건 아닐 수도 있다.
인천공항에 늦게 도착해 수속이 늦었거나
도착할때까지 비행기 안뜨고 기다려준다는 도심공항터미널에서 탔을 가능성도 있다.
해외여행시는 수속시간을 고려하여 3시간 전에 오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좀 더 여유있게 출발했더라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정시에 비행기가 출발하지 못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하며 나 역시도 여전히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한다.



짤방은 기내식.
인천-오사카는 비행시간이 2시간 좀 안되는 거리지만 기내식은 꼬박꼬박 나온다.
시간 많다하여 아무생각없이 공항에서 밥사먹고 타면 나처럼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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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른 삶의 궤적

여행의 단상 2008.07.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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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0일 꽃지 해수욕장에서.

번호판에 남은 라이트 형제의 업적

여행의 단상 2008.07.27 22:31
2003년 1월의 노스캐롤라이나 출장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랠리더햄에 내려 짐을 챙기는데 워크스테이션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게 없다면 우리가 미국에 머물 이유가 없다.
출장지로 보내달라하고 목적지인 Cary로 출발했다.

우리가 출장간 곳은 회사 건물 하나만 덜렁 있는 외지였고
그들의 러시아워는 서울의 혼잡에 비교하면 매우매우 귀여운 수준인 시골이었다.
숙소는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근처 마트를 찾아 음식을 샀으나 우린 요리 불가능.
일주일 버틴뒤 결국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라 퀸타 인으로 옮겼다.

낮에는 햇빛이 따뜻하지만 밤에는 추운 날씨였다.
한국보다는 춥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단히 건조해서 난 그 기후가 매우 힘들었고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더니 결국 돌아오기 전날은 감기에 걸려 누워버렸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스캐롤라이나에 대한 추억은 그다지 아름다울게 없다.

그런 내게 노스캐롤라이나에 대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라이트 형제다.
사실 나는 라이트 형제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비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나
이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짧은 출퇴근 시간동안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구경에만 매진하던 나는
자동차의 하얀색 번호판에 하늘색으로 무언가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그것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모든 차의 번호판에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동행에게 저게 무어냐 물었으나 역시 몰라서 동승한 미국인 FA에게 물으니
"Wright Brothers?"라고 한다.
아하. 저건 글라이더 그림이구나.
라이트 형제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비행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초등학생때 읽던 위인전에는 라이트 형제의 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꿈많은 어린이들에게는 목표가 되는 사람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형제들은 오하이오주 출신이지만 라이트형제 국립기념관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그들의 첫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난 곳에 기념관을 지었고
자동차 번호판에 문구와 그림을 넣어 그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들이 라이트 형제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외국인인 나도 알 것 같다.

일요일 하루는 우리에게 휴일로 주어졌다.
무엇을 할까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FA가 라이트 형제가 비행한 곳에 가보라한다.
벽의 지도에서 해변을 가리키며 여기서 다섯 시간 거리라고.
너무 멀다고 하자 워싱턴 DC를 추천한다.
역시 다섯시간...
중국인들이 대륙기질이 있어 스케일이 크다더니
미국인들의 거리감각도 그에 못지 않구나.
다섯시간이면 어디서든 땅끝에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나라 출신인 나는
하루뿐인 휴일을 10시간이나 길바닥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다니다 길을 잘못들어 고속도로에서 밤까지 휴일을 보내니 후회가 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가 자랑해마지않는 그 라이트 형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에 가볼걸 하고 말이다.

불상에 두른 천의 의미는 대체 뭘까

여행의 단상 2008.07.27 00:54
일본의 사찰이나 오래된 동네에 가면 불상등에 붉은 천을 둘러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나라역 근처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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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교토의 산쥬산겐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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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에서는 붉은 의상의 불상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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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흰색 천으로 두른 곳도 하나 발견했는데 교토 료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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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러, 냅킨, 앞치마라고 농담했지만 그 위치에 둘러진 천의 의미를 모르겠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검색엔진에서 찾아봐도 답이 없다.

붉은 색은 워낙 상징적인 색이고 어딜가도 이런식인지라 나중에는 일본의 불상은 다 그런가했다.
우리네 불상과는 다른 모습에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그냥 넘어가게 되고
첫 여행의 예민한 감각을 자꾸 잃게 되는 것 같다.

인도인과 향신료, 음식

여행의 단상 2008.07.26 14:09

2002년 봄 출장을 가게 되어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그 비행기는 이상하게 인도인 손님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인도에서 한국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가는 노선을 개발했다고 한다.

보통 인도에서 유럽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가는데
유럽인들은 인도인들의 독특한 냄새를 싫어하여 기피한다고.
IMF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노선을 개발하고
기내식도 인도식을 제공하여 꽤 호응을 얻었다고 들었다.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되 대우받으며 탈 수 있어서.
그러고보니 미국 국내선은 동양인인 우리를 기름냄새나는 맨 뒷줄에 태웠었다.
은근히 차별이 있는거구나 싶다.


내 옆에 인도인 할머니가 앉으셨다.
조금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분 영어를 잘하신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건 똑같은데 어째 나는 이만큼 못하는 걸까..휴.
봄베이에서 오셨다고 한것 같은데 미국에 사는 딸의 집에 가는 길이라 하셨다.
거기다 우리 목적지인 산호세.

나는 비행기타면 잠도 잘자는데다 할머니랑 이야기도 나눈 사이라 그런지
인도인 특유의 냄새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어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긴 시간도 잘 버텨냈다.
동행들은 아주아주 괴로웠다고...

식사시간은 조금 괴롭긴했다.
인도인 손님들에겐 인도식이 준비되는데 익숙치 못한 내겐 맛있는 향이 아니었고
기내가 이 냄새로 진동할 지경.
식사가 끝난후 냄새가 사라지는 걸 보면서 비행기의 환기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식사후 차를 마시는데 할머니는 홍차를 택하셨다.
홍차는 취향이 아니다.
내겐 향도 강한데다 각성작용이 너무 심해서 수면방해가 생긴다.
안마시다보니 홍차를 마시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는 잘 모른다.

할머니는 프림을 일단 넣으셨다.
일순 홍차에도 프림넣나? 했는데 뭐 나도 오후의 홍차와 데자와는 사랑하니깐.
그런데 소금도 넣으셨다...
깜짝 놀라 이건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라며 말렸는데..
할머니는 태연하시다.
아니 뭐 음식을 먹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고
남의 취향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아니지만서도..
그런거야? 홍차에 소금도 넣어먹는거야? 인도에선 그런거야?
컬쳐 쇼크.


출장지에 도착하니 우리를 전담할 엔지니어가 인도인이다.
이 사람도 특유의 냄새가 난다.
빡센 일주일 출장동안 거의 붙어있었고 동행들은 역시 괴로워했다.
솔직히 나도 좋지만은 않지만 어쩌랴.
더구나 우리는 마늘냄새 난다고 생각되는 동양인인걸뭐.

어느날 이 엔지니어는 우리를 부페식 인도 식당에 데려갔다.
형형색색의 커리들.
심지어 하늘빛이 나는 커리도 있었다.
인도인인 그는 여러 커리를 잔뜩 접시에 담아왔다.
밥보다 커리가 많다.
반면 동행들은 닭고기만 잔뜩 가져왔다..
친절한 이 사람은 우리를 위해서 데려왔건만
미국에서도 매일 한식찾는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들은 취향이 아니었던거다.
식탁에 따로 난이 나왔는데 내가 난이 아니냐며 아는척 했더니 인도인 아저씨는 무지 반가워했다.
점수 얻었군.
식사후 계산대에는 입냄새 제거를 위한 허브들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커리를 하는 집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요즘은 인도 커리 음식점들이 꽤 생겨서 좋다.
식당에 들어서면 풍기는 그 특유의 향신료 냄새는 이제 버겁지 않다.
따뜻한 난은 맛이 일품이며 부담없는 팔락 파니르는 가끔 먹고 싶을때가 많다.
커리에 좀 더 익숙해지면 인도인을 만나도 부담이 없어질까? ^^

커리사진은 찍어둔 것이 없다.
짤방은 내가 만든 채식"카레"
정말 맛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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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은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

여행의 단상 2008.07.2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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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가을의 어느 날,
히메지성을 보기 위해 오사카에서 히메지로 전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어쩌다 맨 앞차량을 탔는데 운전석이 보이는 객차였고
앞과 옆이 시원하게 보이기에 자리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시골 풍경 아니면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것이 계속 보인다.
한시간 반이나 가야하므로 같은 풍경은 몹시 지루했다.

플랫폼에 지붕도 없는 어느 시골역에 서서히 전철이 멎는데 제복을 입은 4명이 2줄로 서있다.
시골역이니 4명이면 직원들이 다 나와있네..라고 생각하는데
전철이 서자 운전석의 차장이 내렸다.
어느 역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4명은 내가 탄 차량에서 휠체어를 탄 두분을 내렸다.
그때까지 몰랐지만 그 차량의 맨 앞은 장애인용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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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2명을 마중하기 위해 4명이 나오고 차장도 내리다니!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우리 나라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어디 전철을 편히 탈 수 있는가 말이다.
계단에 휠체어용 리프트가 있지만 직원을 부르라고 써있는 곳이 많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전철타는곳까지 간들
곧 출발하니 문이 닫힌다고 서두름을 요구하는 방송이 나오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어찌 탈 수 있을까.
출입문에 계단까지 붙은 기차는 더더욱 엄두도 못낼 일이다.


전철 시간이 정확한 만큼 미리 연락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정중히 손님을 모셔가는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일본인들의 친절함은 메뉴얼적인 거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 메뉴얼적인 친절함조차 부족한 세상아닌가.
부럽다.
몹시도 부럽다.

욘사마를 좋아하던 소녀같은 일본인 아주머니

여행의 단상 2008.07.2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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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의 어느 일요일 아사쿠사에 갔다.
기념품 거리에 한류가 인기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있어 웃어버렸다.
맨 위는 배용준씨다.

배용준씨를 처음 TV에서 본 것은 김지호씨와 함께 출연했던 사랑의 인사라는 드라마였다.
얼굴 밝히는 나는 배용준씨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클라스메이트였던 남자애에게 이야기를 했다가 기생오라비 취향이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배용준씨는 많은 인기를 얻은 스타가 되었고 일본에선 한류의 주역이 되었다.
그 미소가 돈주고 연습해서 만들어진 가식적인 거라는둥 험담이 있지만
계속 웃으면 사람 마음도 그에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배용준씨의 미소를 좋아하고
열성팬은 아니지만 내겐 계속 호감이 가는 배우로 남아 있다.


며칠뒤 도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이제 익숙해진 출입국 카드를 휘리릭 써버리고 쉬고 있는데
옆의 아주머니 두분이 출입국 카드를 놓고 한동안 씨름중이셨다.
아버지 환갑때문에 귀국이 허락되었고 마침 친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오지랖 넓은 나는 도움을 주겠노랍시고 끼어들었고
영어, 일어, 바디랭귀지가 혼합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찌어찌 출입국 카드를 쓴뒤 아주머니께서 다스 초콜렛을 권하셨고 예의상 한개 집어 먹었다.
동행이 있으신 분이라 그정도에서 대화가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 말을 거셨다.
일어로 대화할 줄 알고 난 더이상 말붙일 엄두를 못냈었는데 영어를 곧잘 하셨다.
이 일본인 아주머니께서는 한국에 가는 것이 처음이라며 배용준씨 팬이라고.
일본의 중년 여인들이 배용준씨에게 열광한다고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라 많이 놀랐다.

사실 좋아하는 배우때문에 외국까지 갈 할머니는 우리나라에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아들뻘인 배우때문이라면 주책맞다는 소리도 들을 것이다.
사는 집이니 그런 짓도 하지라며 시기어린 소리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에 돈을 쏟아붓고 팬질에 익숙한 사람이 많지 않은가.
나이는 걸림돌이 못된다.
좋아하는 배우때문에 첫 한국여행을 하게 되어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처음 본 나에게 수줍어하면서 조용히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시는 그 아주머니가 난 너무 좋아졌다.

후유소나를 몇번이고 봤으며 배용준씨가 너무 좋다고 하신다.
자신에게 그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말씀하셨다.
친구와 자신은 춘천에도 갈 예정이라고.
가방에서 꺼내 보여준 손거울 안쪽에는 미소짓는 배용준씨 사진이 있었다.
6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첫사랑에 설레는 소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 나는 겨울연가를 다 챙겨보지 않았지만 맞장구를 치기위해 최지우씨와 박용하씨 이름도 들먹거렸고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너무 좋아하신다.
도쿄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도착후 2박 3일동안 잠실 롯데 호텔에 머물거라는 두 분과 헤어졌다.

짧은 귀국 일정을 마치고 다시 출국하면서 도쿄에 도착하니 공항에 사람이 많다.
그날 욘사마가 도쿄에 오는 날이었다.
혹시 그 아주머니도 나오셨을까..
그 아주머니들이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갖고 돌아오셨기를
계속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시며 사시길 바랬다.